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드코어 펑크 (문단 편집) ==== [[포스트 하드코어]]로의 진화 ==== 마이너 쓰레트는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지만 3년만인 1983년에 해산하게 되는데, 이는 갈수록 심해지는 하드코어 씬의 배타성과 폭력성에 리더 이안 맥카이가 지친 탓이었다. 그는 자신이 시작한 스트레이트 엣지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는 걸 보고 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. [* 밴드 해산 후 1984년에 그의 동생 알랜 맥카이가 공연장에서 관중 한명에게 폭행당하는 일까지 발생한다.] 거듭된 불상사에 그는 하드코어 씬에 염증을 느끼고 하드코어를 떠나게 된다. 거기다 배드 브레인스까지 장소를 [[뉴욕]]으로 옮기면서,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하드코어를 시작했던 워싱턴 DC 씬은 그렇게 끝나게 된다. [youtube(fxNPl6ef4zs,width=640,height=360)] 그 사이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하드코어를 좀 더 음악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점점 등장한다. 이러한 움직임을 '''[[포스트 하드코어]]'''라고 한다. 대표적인 밴드들로는 [[허스커 두]]나 [[미니트맨(밴드)]] , Saccharine Trust 등등이 있다. [[블랙 플래그]]의 기타리스트 그렉 진이 본인들의 음반을 내기 위해 시작한 [[인디 음악|독립 음반사]]인 SST 레코드에서 이런 밴드들을 발굴해서 발표했다. 포스트-하드코어가 들려준 거친 사운드로 포장한 감수성은 [[얼터너티브 록]] 등 수많은 인디 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. 현재는 포스트-하드코어라는 용어가 좀 더 대중적인 보컬이 있는 [[메탈코어|멜로딕 메탈코어]] 밴드들을 가르키는 용어로 더 많이 쓰이고 있지만, 원래 포스트-하드코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하드코어 이후의 하드코어, 즉 기존의 하드코어의 음악적 영역을 뛰어넘는 시도를 한 하드코어를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이다. 그러한 음악적 시도로는 (밴드마다 특색이 다양하지만) 예를 들면 감성적인 멜로디, 복잡한 박자 변화와 곡 구성 등이 있고, 기존 하드코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였다. 80년대 초반의 1세대 하드코어 흐름과 더불어, 80년대 중반의 포스트-하드코어 흐름은 전 세계의 인디 록에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의 영향을 주었다. 과격하게 폭발하는 감성을 들려준 밴드들은 [[얼터너티브 록]]에, 소음에 가까운 신기한 기타 연주를 들려준 밴드들은 [[노이즈 록]]에, 박자를 갖고 노는 시도를 했던 밴드들은 [[매스 록]]에, 이러한 온갖 시도를 합쳐 록 음악을 한 차원 높이려고 했던 [[포스트 록]]까지... [[너바나]]의 [[커트 코베인]]과 [[데이브 그롤]], [[소닉 유스]], [[슬린트]], [[스티브 알비니]] 등등 뮤지션들은 하드코어를 엄청 좋아했고, 그래서 몇몇은 이를 음악적 바탕으로 삼았다.[* 앞에 나온 아티스트들처럼 거칠고 시끄러운 펑크 록 장르를 연주한 밴드들 이외에도, 관련 없는 듯한 아티스트들도 하드코어에 영향을 받은 경우가 꽤 많다. 예로 [[마이 블러디 발렌타인]]이 초창기 [[포스트 펑크]]를 연주하다 80년대 후반에 본격적인 [[슈게이즈]]로 넘어가게 된 것에는 [[https://www.uncut.co.uk/features/my-bloody-valentine-we-were-like-the-partridge-family-on-acid-129985/|허스커 두나 다이노소어 주니어 같은 밴드들의 영향이 있었다]]고 밝혔으며, [[요 라 텡고]]도 [[미스피츠]] 같은 밴드들을 좋아했다.] [youtube(Wf_ucq-NwTo,width=640,height=360)] 얼마 있지 않아, 1980년대 중반 워싱턴 DC에서는 새로운 성향의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. 이들은 좀 더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내용의 가사를 썼고, 음악도 거기에 맞게 좀 더 멜로디가 중시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선보인다. 이 때의 밴드들로는 이안 맥카이가 마이너 쓰레트 이후 시작한 엠브레이스나 라이츠 오브 스프링, 댁 나스티 등이 있으며, 이들은 이후 등장할 [[이모(음악)|이모]]의 시초로 여겨진다.[* 하지만 이안 맥카이는 이모라는 말에 대해 "살면서 들어본 가장 멍청한 말(...)"이라고 표현했다.] 이 시기 DC 밴드들을 가르키는 '''레볼루션 서머(Revolution Summer)'''라는 용어가 있다. 기존의 하드코어 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, 음악 내적으로나 음악 외적으로나 하드코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시도를 한 밴드들이라는 뜻이다. 이안 맥카이를 중심으로 이러한 밴드 멤버들이 뭉쳐서 만든 DC씬 포스트-하드코어 [[슈퍼밴드]]가 바로 [[푸가지]]. 푸가지는 90년대 언더그라운드/인디 록의 영웅으로 성장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